잘 먹고 잘 살기.

http://hani.co.kr/arti/culture/book/249132.html
(카테고리를 기사스크랩으로 해야 할지, 손때묻은 책으로 해야 할지, 어쩔지 고민하다가. 결국 공존에 넣었다=_= 기사 스크랩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 안읽은 책에 손때를 묻혔다곤 못하지.)



어릴 때부터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일이 많았고, 원래 부엌일에 흥미가 많은지라 이것저것 혼자 잘 만들어먹기도 했다. 스무살이 넘는 나이까지 누나보다 무려 라면을 잘 끓였으며, 사촌형과 함께 살 때는 수십가지의 볶음밥을 만들어대다가 마침내 김치볶음밥의 환상의 레시피를 발견해냈고, 밑반찬 다섯가지 정도는 할 수 있다. 밑반찬이 아닌 반찬은 열가지 쯤? 가장 어려운 요리는 김치국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가장 심플한 게 가장 어렵다.

그러다 보니 여러가지 부수효과들이 생겼는데 첫째로 살이 졌으며(-_-;), 둘째로 패스트푸드를 싫어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음식이 귀한 걸 조금쯤은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침 8시에 온 가족이 떡국을 먹으려면 어머니는 적어도 6시 정도에 일어나서 어제 미리 끓여두었던 고기육수를 다시 끓여야 한다. 냉동실에서 떡을 꺼내 물에 바각바각 씻어내고, 잽싸게 열다섯개쯤의 만두를 빚어야 한다. 떡국은 너무 오래 끓여선 안된다. 그래도 충분히 익히지 않으면 설사를 하기 쉽상이니까(어머니들은 무언가 잘못 먹으면 반드시 설사를 한다는 이상한 신념같은게 있다.) 떡이 충분히 익도록 끓이는 동안에 딤채에서 김치를 꺼내서 썰고, 떡국에 넣을 파를 다듬고 김을 굽는다. 조금 바빠진다. 밥공기와 수저,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을 밥상에 올리고 가족들을 깨운다. 밥이 다 되었다. 밥을 말아먹을 가족이 있을 수 있으니까, 조금 해 두었다. 이때쯤에 마지막으로 계란을 풀고 파를 넣는다. 계란을 너무 일찍 넣거나 하면 국이 퍼지기 쉽다. 너무 휘휘 저어선 안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8시 5분. 그렇게 해서 한 가족의 아침식사가 마련된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다시 출근길. 아침에 떡국을 끓여버렸으니 오늘은 저녁도 새로 반찬을 따로 해야한다는 생각에 조금 머리가 아프다.

새로 국을 끓이거나 반찬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30분이고, 그 시간은 새로 밥을 지어먹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슷하다. 스스로 이런 일에 익숙한 내가 주문한지 3분만에 나오는 햄버거 따위가 반가울 리 없다. 기계면 짜장면과 수타면 짜장면이 주는 감동의 차이가 큰 것 만큼이나, 시간을 주어 손으로 만든 음식과 오로지 신속성을 목표로 만든 음식이 줄 수 있는 행복의 차이도 크다. 아니 적어도, 만드는 사람이 "간" 정도는 봐 줄 만큼의 정성만 있더라도.

내가 만들어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3년 전에 전라도로 농활 갔을 때, 가을이었다. 마침 준비해 간 쌀이 다 떨어져 숙소 앞의 정미소에서 한봉지를 팔아와 밥을 지었는데 세상에, 유명한 김해평야의 햅쌀, 그것도 추석 이후 거둔 정말 일품쌀이었다(하지만 농활 온 학생들이라고 굉장히 많이 주셨다). 무쇠솥의 뚜껑을 열어 맛을 본 그 지름하고 고소한, 달디 단 쌀 맛은 정말 내가 평생에 본 가장 맛있는 쌀밥이었다. 그 맛은 피자 햄버거 스파게티 등과는 아예 다른 세상에서 떨어져내린 것. 이 맛을 한번 본 한국사람이라면,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러고 나면, 어린 아이들도 기름지고 유해한 패스트푸드나 고칼로리 음식을 멀리할 텐데.

식품이 산업으로 탈바꿈하자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획득하려는 이들이 넘치고 깔리게 되었다. 순대국이 맛있어 찾아가는 집에서, 개차반같은 밥을 만나면 정마저 떨어진다. 중국산 김치, 중국산 쌀로 가격을 유지하는 염가김밥집들은 햄버거보다도 싫다. 거창한 호화식단이 아니라 잘 익혀진 김치(갓김치가 먹고싶다), 기름진 쌀밥(아놔 아침 먹고 왔는데 또 배고프네), 간이 잘 배인 생선조림(이쯤되면 뉴뉴) 따위를 자식에게 차려줄 어버이들을 우리 사회는 어디로 내모는가. 엄마와 마늘을 까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덧. 그 밥이 맛있었던 비밀을 한가지 알리자면 "추석 뒤에 나온 쌀"이기 때문이다. 보통 추석 전에 나와 "햅쌀"이라며 불티나게 팔리는 품종은 조생종으로서 이를테면, 쌀 종목의 패스트푸드다. 농민들은 조생종은 잘 먹지 않고 추석 뒤에 거둔 쌀을 먹는다.

by 공존共存 | 2007/11/11 10:52 | 『co-existence』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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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갈교 at 2007/11/11 14:06
제가 중국 와서 제일 먹고 싶은건 정말인지 따끈따끈한 밥에 잘 익은 김치일까요.
(중국에도 한식당이 있지만, 고국에서 먹는 것과는 천차만별이죠.)
Commented by cielcide at 2007/11/11 15:19
그러니까 마포 가자
Commented by 공존共存 at 2007/11/11 17:51
God of 웰빙 마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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