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09일
비만의 제국 - 그랙 크리쳐

제목만을 보고 2001년 이후 쏟아진 미국제국주의 비판서적이라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눈에 도드라지는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은 아니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책이니까. 이 책은, "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나라가 되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문제제기이다. 흔히들 비만을 개인의 나태함이나 영양과다로 이해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사회적 함의와 자본의 욕망이 숨어있다는 것을 저자인 그렉 크리쳐는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쾌하게 해설해준다. 다소 가볍게 흘러가는듯 하면서도 핵심을 콕, 찝어가면서 결론으로 독자의 눈을 끄는 그의 솜씨가 영 얄밉다.
우리가 식품의 유통기한을 일일히 확인하며 대형슈퍼에서 음식을 사게 된 것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재래식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야채 과일 고기 따위와 달리, 슈퍼에서 살 수 있는 햄, 우유, 소시지 따위는 훨씬 많다. 그리고 싸다. 같은 식품을 원재료로부터 가공하고 포장하여 판매하는데 그것이 원재료 그대로인 재래식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싸다면 우선 그 이유를 1.중국산이다. 2.상한 것이다. 두가지로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중국산이 아니라 국산이며, 그럴리 없겠지만 아주 싱싱하다면? 현대 식품산업의 발전이 바로 그 문제의 답이 될 수 있다. "그 식품은 대량생산되었다."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식품을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은 대부분이 그 지역에서 소비되었다. 장기저장이 가능한 소수의 음식들이 아니고서는, 식품을 "상하기 전에 다 먹을 수 있는 양 이상으로" 생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장기저장이 가능한 식품들이라고 해도 대부분 염도가 높아서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른바 이 책이 이야기하는 "식품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만성적이고 보편적인(물론 기득권층은 예외겠지만) 영양결핍이 나타나고 있었다.
산업의 발전은 모든 것에서의 진전을 불러왔다. 유통망과 포장재료의 발달은 원거리교역을 더욱 가속화했고, 국가규모의 교역에서도 더욱 다양한 품목을 거래할 수 있게 하였다. 국가산업의 기반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옮겨감에 따라 인구 역시 급속히 도시 중심으로 재편되었는데, 때문에 농업은 인구집약적 재래산업으로는 채산성을 유지할 수가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미국 역시, 공업국가로 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국가가 즐비한 아시아와 남미로부터 수입된 싸고 질좋은 식품들에 의존하지 않고는 농업을 유지하기가 힘이 들었다.이때에 미국의 관료들은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자국의 농업을 산업화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면?
이러한 미국의 시도는 처음에는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 1960년대까지의 사회문제였던 영양결핍은 적어도 미국 내에선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농업수입국에서 농업수출국으로 완전히 변모하는 데 성공했다. 식품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인 당분을 놀랍도록 싸고 간편하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미국은 곧 이어 모든 식품을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그리고 지금, 21세기.
미국은 최소 연간 84조3510억여원의 비만비용을 지출하는 나라가 되었고, 비만율과 함께 그 액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미국인의 10명중 6명이 과체중이며 해마다 10만명이 과체중으로 사망한다. 어떻게 이런 나라에서 그 멋진 헐리우드 스타들이 활보하느냐고? 그것은 그들이 유식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빈곤층의 자녀가 부유층의 자녀보다 훨씬 높은 비만율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부모가 가정에서 식품에 대한 지도를 할 만큼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빈곤층의 자녀는 부모의 도움 없이 싸면서도 배부른 음식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공업적으로 생산된, 가공음식의 조건과 일치한다.
미국 내에서 비만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미국의 식품산업 재벌들은 집요한 로비활동으로 미국 내에서 식품생산과 가공에 대한 제재가 시행되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비만은 언론과 정치가의 입을 통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된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것.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총기문제를 예로 들면 좋을 것이다. 수많은 미국인이 총기소유정책을 문제삼아도 미국의 군수자본과 결탁한 정치가들은 총기를 제재하려 들지 않는다. 그로 인해 미국에서 총기사고로 죽는 인구가 연간 3만명,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생산된 총기로 인해 희생되는 전세계인들의 인구는, 추산조차 불가능하다.
<비만의 제국>은 이와같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자본과 정치의 결탁으로 개인의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명쾌히 알려주며, 그에 대한 과감한 대책을 요구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유효한 충고다. 국내의 비만율은 꾸준히 오르고 있고, 그에 대해 사회적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아직 없는듯 하다. 웰빙 트렌드에 발맞추어 좋은 음식 먹기 등의 활동도 드문드문 보이지만, 그것은 미국에서의 예와 같이, 여유있는 사람의 경우다. 싸고 배부른 음식을 찾는 우리의 아이들이 날로 많아지고 있다.
덤으로 미국의 경우엔 의료보험제도가 붕괴되어 비만질병의 치료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비만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하니, 이 기회에 사회적 차원에서 비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목차
추천사┃미국이 퍼뜨리는 '비만 전염병'
머리말┃비만의 제국, 미국
1. 값싸고 풍부하고 맛있는 칼로리의 향연
농촌 표를 붙잡아라│고과당옥수수시럽의 탄생│공공의 적, 식품 가격│팜유, 민주주의를 위한 연료?│값싸고 풍부하고 맛있는 칼로리의 향연
2. 어떻게 더 큰 것으로, 더 많이 먹게 되었나?
'라지 사이즈'라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세트 메뉴의 탄생│싼 값에, 더 많이!│끝없는 포만감
3. 무절제한 칼로리의 나라
자제력을 무너뜨린 패스트푸드│맞벌이 문화가 가져온 외식업의 부흥│과식을 부추긴 육아 교육│군것질하며 걸어다니는 지방 제조기│학교를 점령한 패스트푸드│엉터리 다이어트 서적│종교의 지나친 관용주의│'라지 사이즈'의 눈속임
4. 과체중과의 공생
줄어만 가는 체육 시간│체육 교육 예산의 삭감│돈으로 사야 하는 건강│늘어나는 TV 시청, 늘어나는 몸무게│전국적인 체력 테스트│새로운 체력 테스트│현실과 타협하는 운동 처방│매스컴의 무지│새로운 보고서의 출현│느슨한 체중 지침│과체중에 대한 심각한 과소평가│뚱뚱하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는 망상
5. 비만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
빈곤층의 비만 문제│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패스트푸드 광고│왜곡과 차별이 조장한 비만│당뇨병, 비만 경시가 가져온 질병
6. 비만이 부르는 무서운 병
패스트푸드의 새로운 수요층│계속 증가하는 어린이 당뇨병 환자│과당과 콜레스테롤│비만이 부르는 무서운 병│비만에 드는 사회적 비용│비만의 환경적·유전적 요인│비만 판타지
7. 뚱뚱한 나라여! 움직여라!
샌안토니오의 희망찾기│부모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자녀와 함께하는 체력 단련 프로그램│학교, 비만을 물리치는 전쟁터│잠자던 거인 깨어나다│정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지옥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부록┃도표와 주
[알라딘 제공]
# by | 2007/11/09 23:48 | 『손 때 묻은 책』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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