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28일
바리데기 - 황석영

만원이었던 것 같다. 출근하는 길이었고, 나의 눈은 활자를 찾고 있었다. 한시간 여의 출근길에- 무엇이 여의할 것인가, 지하철의 가판대에서 쉽게 골라내었고, 쉽게 읽었다. 출간된 지는 한참이 지나 있었다. 세심하게 공을 들인 흔적이 군데군데 엿보이는 제본, 아름다운 표지디자인. 나를 각 장마다로 이끌어 주는 칠성이의 긴 꼬리처럼, 책은 긴 여운과 감동을 매번 주었다. 황석영의 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또,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이제껏 황석영의 작품을 읽지 않았냐고 하면 그것은, 내가 소설을 읽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독서편력은 변변치 못한데 그나마도 소설을 배제하고 채워져 있었다. 군대에 가기 전의 나는, 소설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소설이란 한편의 영화라거나와 같아서, 그저 즐기고, 감동을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무언가 공부하고, 무엇인가 고민케하는 그런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그런 나의 독서편력을 부순 게, 어쩔 수 없이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읽을 수 밖에 없는 군대에서의 독서였던 것인데 도리어 요즘 들어서는, 소설의 가치와 미학을 유심히 생각하게 되었다. 조르바의 이를 데 없는 자유, 마콘도의 안타까운 숙명, 연암의 분방함과 호방함, 백작의- 낭만과 사랑 그 모든 것이, 이른 바 "공부"로는 어디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그것은 아마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이를 테면, 구구단을 좀 못해도 얼마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람구실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인문과학 혹은 사회과학이라는 것들이 사실은 정말 사람이 사는 것에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삶에서 유리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치가 없는 것 만큼이나, 혹은 그 자체가 삶이라면 모를까.
바리데기에는 그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북의 사람들, 보트피플, 이슬람. 세상의 모든 억압받는 민중들을 끌어안아 보겠다는 작가의 과욕은 몽환과 현세를 버무리는 그 놀라운 솜씨에 무섭도록 훌륭히 완수된다. 살갑기만 한 북의 사투리, 무가를 통해 보여지는 온 세상에 대한 연민, 억압받는 사람들 그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서사. 북과, 중국과, 영국을 넘나드는 바리의 여행은 하나하나가 뼈아프기만 한 당위를 가지며, 그것은 고스란히 지옥같은 현세의 고통을 비추어낸다. 누가 이들을 굶주린 채로 대륙에서 대륙을 떠돌게 하는가, 탐욕과 증오에 가득찬 채로.
그 몽환과 애절한 서사는 <백년동안의 고독>과 닮은 부분이 많은 것인데, 현실과 환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우러지며 읽는이를 흡입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경험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백년동안의 고독>에 바쳐지던 찬사는 그대로 바리데기에도 부합되는 것이며, 차별로써 보편을 이야기하는 <백년동안의 고독>과 보편으로써 차별을 이야기하는 <바리데기>의 서사는, 휴머니즘의 가장 유익한 부분만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과연 황석영이 바리데기로써 우리 문학에 또 깊은 발자욱 하나를 남겼다는 것이 결코 과한 평가는 아니란 것을, 누누이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앞으로의 저작에 더욱 큰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전에 물론, 황석영의 다른 저작들을 훑는 것이 순서이겠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한겨레에 연재할 당시에 함께 수록된 그 삽화들이 모두 빠져있는 것인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점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걸리버여행기에서 삽화가 차지하는 그 중차대한 역할에 비교하면 물론, 삽화의 질은 떨어질 수 있을지 모르나 이 또한 멀고 먼 미래까지 소설의 가치를 더욱 빛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주류문학계에서보다는 진보계층에서 환영받아온 황석영의 문학이 더욱 큰 발걸음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그의 나이가 이제 예순이 넘었으니 이제는 푹 고아낸 진한 국물같은 소설이 뽀얀 때깔까지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 술먹고 글을 쓰는 게 아닌가보다. 벼르던 글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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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9/28 02:42 | 『손 때 묻은 책』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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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기획회의'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회의 주제가 '한국문학의 희망'입니다.
황석영의 '바리데기' 독자서평을 기획회의에 담아내고자 하는데 도심소요 블로그의 서평을 잡지에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을 보시고, 서평 사용 여부에 대한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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