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주마. 『co-existence』

(...이라고 제목을 달면 보통 신명나는 음악과 적절한 짤방이 함께하는 낚시글을 볼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본격 진지한 글입니다. 재미도 없고 떡밥도 없어요.)

아래의 글은 오늘 수업에서 시행했던 상벌점제도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체벌금지정책 이전에는 체벌은 대단히 가벼운(어깨를 아프도록 주물러주거나, 손을 들고 서있으라고 하거나) 정도로 시행해 왔다.

교실에 들어간다. 나는 정시보다 30초 가량 먼저 교무실에서 떠나는 편이라, 내가 교실에 들어가면 1/3가량의 학생은 자리를 비우고 교실을 돌아다니고 있다. 열 셀 동안에 앉아라. 말을 한 뒤에 크게 열까지 셌다. 동시에 칠판의 오른쪽 끝에 파랑색과 빨강색의 큰 네모를 그렸다. 숫자를 다 센 뒤에는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 아이들의 이름을 빨간색 원에 적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빨강색은 벌점, 파랑색은 상점이다.

2. 상점과 벌점은 서로 상쇄된다.

3. 1회의 수업에 한사람에게 3점까지 상점을 준다

4. 한 사람은 같은 경우의 선행으로 상점을 연속해서 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행동을 3번 했을 때, 최초의 1번만 상점을 포상하고, 그 사람은 질문에 대한 대답 이외에 다른 행동을 통해 상점을 얻을 수 있다.)

5. 단, 위의 네번째 규칙은 벌점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상점을 줄 때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6. 상점을 주고 나서 1분간은 같은 행동에 대한 상점은 주지 않는다.

벌점은 최대한 정량적으로 주려고 했고, 상점은 되도록 뜬금없이 주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이 나의 행동을 예측하고 행동하면 상점이 금방 바닥나버리고 도리어 수업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게다가 똑똑한 아이들이 3점을 빨리 챙겨가기 때문에 수업태도가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상점을 포상하도록 노력했다.

수업이 10분가량 진행되었을 때, 평소에 수업태도가 무척 안좋은 아이가 스스로 서 있길래, 이유를 물었다. 졸려서 깨려고 서 있다고 답을 했다. 그에 대해서 상점을 주었다.

다른 한 아이는 평소에 수업태도가 좋은 편이었는데, 공부는 잘 하는 편이 아니어서 상점을 잘 받지는 못했다. 그 아이가 수업중에 대답을 하길래 바로 상점을 주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되도록 다양한 학생들이 상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정말 너무 수업하기 싫은 반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학생들이 스스로 너무 조용한 것에 놀랄 정도였으니까. 긍정적 행동을 통해 상점을 받음으로써 벌점을 취소할 수 있기 때문에, 수업태도가 좋지 않았던 아이들도 벌점란에 이름이 기입되어 있는 동안에는 대단히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벌점란에 이름이 남아있는 아이는, 앞으로 불러서 별도의 숙제를 주었다. 이것도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숙제를 죽어도 안하던 아이가 순식간에 본문 일부를 세번 베껴왔다.

이러한 상벌점제도를 수업중 운영하는 데에는 몇가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체벌이 금지되고 상벌점제도를 강화해서 운영하는 것에 대한 확실한 설명을 아이들에게 해 주어야 한다. 체벌이라는 통제수단이 사라졌기 때문에, 상벌점제도를 통해 학생들을 규제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벌점이 학생들에게는 체벌보다 오히려 무서운 통제수단이기 때문이다. 남녀학생을 불문하고 한대 맞고 끝낼 일을, 벌점을 받아 계속 문젯거리를 떠안고 지내고싶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학생은 어차피 세게 때리진 못하니까. 때문에, 체벌금지정책 이전에는 아이들이 체벌하는 교사보다 벌점주는 교사를 더 싫어하고 백안시했다. 벌점 하나만 받아도 아주 질색팔색을 하면서 수업을 포기했을 정도로.

그러나 체벌금지정책으로 말미암아, 교사는 상벌점에 대한 강한 유인효과가 생겼고, 학생들도 벌점에 대해 예전만큼 극단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체벌의 대안으로서 벌점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아이들에게 자리잡아질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수업중 용인되는 행동/용인되지 않는 행동을 설명할 필요도 있다. 나는 이미 수차례 그를 설명했고, 그럼으로써 정량적인 벌점수여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었다.

이상과 같이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느낀 바는, 하나마나하는 미약한 체벌보다 훨씬 강도높은 통제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체벌금지정책으로 인하여 아이들에 강화된 벌점제도와 훈육조치에 대해서 조기에 적응할 수 있었단 점이 가장 중요한 성과다.

개선점과 제한사항은, 연간 사용할 수 있는 상벌점에 한계가 있다는 점인데 사실 수업을 하면서 벌점자를 기입하는 이유는, 수업에 대한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벌점자란에서 이름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벌점은 부족하지 않으며, 상점에 대해서는 별 수 없이 조금 쩨쩨해져야 할 것 같다.

벌점을 겁내지 않는 학생들이 있지 않느냐, 벌점은 답이 아니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 분이 계신다면. 다른 블로거들이 이미 각종 징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징계 및 훈육조치라는 것이 꼭 그렇게 정학/퇴학같은 살벌한 것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체벌에 대한 대안은 여러가지로 마련될 수 있다. 부정변증법님의 포스팅과 나의 문제제기를 복기해보면, 부정변증법님은 체벌금지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의 정치적 마인드의 부족을 지적했고, 나는 체벌문제가 공론화된지 이미 10년 이상 지난 지금 교사집단이 대안마련을 요구하는 것이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체벌을 안하는 교사는 이미 대안을 알고 있는 게 당연한 이치다.

물론 어떤 문제제기에 있어서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곽노현교육감에게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은 두가지를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교직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안이 아니라 정책추진의 전략적 미스이며

이미 대책마련이 여러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단지 일부의 교사와 당신들이 무시하고 있었을뿐.

덧글

  • ⓧlumi 2010/11/03 21:41 # 답글

    교단에 선 분은 훨신 더 두뇌노동을 하게 되는 일 같습니다만 멋있네요.
  • 공존共存 2010/11/03 22:36 #

    담당하고 있는 과목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하지만 수십명의 학생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게 정말로 역량이 필요한 일인것 같습니다.
  • FELIX 2010/11/03 23:36 # 답글

    멋집니다! 이런 대안들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지요.
  • 공존共存 2010/11/04 13:04 #

    물론 매 시간마다 상벌점을 기입하는 것도 좀 귀찮긴 합니다. ㅎㅎ
  • 解明 2010/11/04 22:40 # 답글

    '본격 진지한' 내용은 넘어가더라도, 적어도 신명나는 음악은 깔아라. (...)
  • 2010/11/04 23: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부정변증법 2010/11/04 23:55 # 답글

    타임오프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처벌은 학생들이 가장 회피하고 싶어하는 부정적 자극이라야 하죠. 매는 사실 그다지 두려워하는 부정적 자극이 아닙니다. 효과도 없죠. 몇몇 억센 남선생 외에는 겁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에 늦게 가는건 정말 싫죠. 그래서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간은 마치 농구나 미식축구처럼 수업시간에서 제외하는 겁니다. 선생이 일을 더 하겠다는데 누가 뭐래겠습니까? 그런데 이거 아주 잘 먹힙니다. 딱 초시계 꺼내 들면 떠드는 애들을 자기들끼리 면박줘서 아닥시켜버립니다.

    아참, 저는 수업종 치고 1분여가 지나야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 공존共存 2010/11/05 10:22 #

    아 원어민 교사분이 쓰는 걸 봤는데 저도 한번 활용해봐야겠네요. 음...
  • 공존共存 2010/11/05 10:23 #

    저는 무조건 일찍-_-;; 젊은 탓도 있고 교생 갔을 때 수업종치고 3,4분 뒤에 수업들어가시는 모습이 약간 거북해보여서요..
  • 부정변증법 2010/11/05 11:13 #

    지각생을 양산하지 않는 방법은 조금 기다려 주는 것이며, 떠드는 아이들을 양산하지 않는 방법은 정숙한 교실에 대한 기준을 바꾸는 것이라는 지난 세월의 깨달음이 있습니다. 초창기엔 교실 문 앞에서 어정거리다가 종 치자마자 쑥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런데 지금은 사회과교실을 스스로 만들어서 쓰고 거기 상주하고 있어서 수업 시작과 끝이 모호합니다. 점심시간, 방과후 시간에도 숙제를 위해 컴퓨터를 쓰는 학생들이 오니까 완전 종일 근무입니다. PC방 주인? 아, 때론 애들 점심시간에 와서 스타크래프트 시합도 합니다.
  • 2010/11/25 23:2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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