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현실비판과 현실도피는 구분하자

1교시 시험을 마쳤다. 답안지를 수거해 연구부 담당교사에게 넘기고 자리에 앉았다. 친구에 대한 글을 쓰는 중이었어서, 이글루스에 들어왔다가 blus님의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김예슬씨의 자퇴선언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자퇴. 고려대 경영학과. 선언서. 하나같이 무거운 언어들 뿐이라, 손대기 어려웠던 블로그의 먼지를 털어내야만 할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현실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라고 무명씨에게 되묻고 싶다. 무명씨의 글에서도 인정을 했듯이 우리 사회의 인프라는 초라하다. 경쟁에 지친 아이들은  매년 수십명씩 중고등학교를 떠나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학생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휴학을, 자퇴를 한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마침내 대학까지 졸업을 하고 나면 머지 않아 명예퇴직으로 휘청 인생이 꺾어진다. 김예슬씨의 자퇴선언은 그러한 인생의 트랙에서 벗어나겠다는 한 인간의 자유선언이며, 현실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다.

우선 그런 현실을 입진보들이 만들었다는 무명씨다운 개소리는, blus님도 말하지만 좀 솔직해 지시라. 수십년간 누적되어 온 정책 오류와 김영삼정권 이래로 밀어닥친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오늘날의 격차사회를 만든거지. 경제성장율이라는 짐을 등에 지고 싸움에 나서, 방어에 실패한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 대통령분들의 잘못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공부해서 대기업에 취업하는 길이 아니라 무상급식, 생계비 지원, 비정규직 철폐와 같은 실현가능한 정책적 수단들이다. 나 한사람이 다행히 대기업 취직하고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면, 내 가족과 내 자식도 모두 잘 살 수 있을까? 
 
김예슬씨의 글이 열심히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을 속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데, 조금이라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김예슬씨에 대해 입진보의 정치퍼포먼스적 현실도피라고 말하는 무명씨 역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게다가 뭐, 취집? 여성들이 취집을 택하는 이유가 뭐인것 같은가? 제발 정신 좀 차리길 바란다.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무명씨나 아리아리랑이 주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모델에서 점차 떨어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무상급식이 90%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나,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지원이 제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등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근 20년 가까이 우리를 옭아메어 온 고도경쟁사회의 고리를 풀고, 모든 사람이 보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하여, 우리는 더 많은 김예슬씨가 필요하다.

그녀에 대해 도피라고 부른다고 한들, 사실 상관은 없다. 도피 역시 하나의 저항행위가 될 수 있으므로. 그러나 무명씨처럼, 아리라리랑처럼, 이 현실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쌀 한톨이라도 보탤 생각이 없다면, 그들이야말로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수요일. 김예슬씨에 대한 논쟁이 뜨겁던 때에 전국의 중고등학생이 일제학력평가를 치렀다. 그들의 학력의 좌표가 전국단위로 좌르륵 줄세워질 것이다. 이 시험.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전국단위로 보지 않았다. 일정 비율로 표본을 추출해 시험을 치르고, 학력을 평가하여, 교육과정을 개편하는데 쓰는 것이 이 시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도 방법도 잘못된 지금의 학력평가를 위해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기를 쓰며 다툰다.

나는 먼저 투표권을 획득했던 성인이자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참혹하다. 마찬가지로, 결국 자퇴라는 수단을 택해야 했던 김예슬씨에게도, 미안한 심정이다. 현실에 굴복해서는 현실은 차츰 더럽고 추해질 뿐이다. 같이 땀을 흘려주지 못할 거라면, 적어도 침을 뱉지 말아야지.

by 공존共存 | 2010/03/13 13:47 | 『co-existence』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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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명랑노트' Seasi.. at 2010/04/16 02:02

제목 : 대학은 실제로 붕괴하고 있다.
표면을 너머 그 속을 보라. 화려하게 자퇴한 몇몇 대학생들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날 때 조차도 몇몇 사람들은 그들 개인에 대한 비난비방에만 열을 올렸을 뿐, 그 자퇴생들이 부각될 수 있었던 배경에 어떠한 트렌드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현상이 기저에서의 작용 없이 일어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화려한 자퇴생들의 선언처럼 대학은 점점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본다.......more

Commented by 심영 at 2010/03/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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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도 진보가 왜곡한 거라는 부록열사의 개쩌는 위엄.jpg
Commented by 공존共存 at 2010/03/16 09:31
진명행은 답이 업ㅂ네요
Commented by ㅇㅇ at 2010/03/16 02:11
인터넷에서 죽치고서 절필 선언도 뒤엎는 무명씨인데...
고대녀보다 자기 신상 걱정부터 했으면...
저렇게 넷상에서 집착하면 먹고나 사나 몰라요...
Commented by 공존共存 at 2010/03/16 09:32
무명씨의 현실도 풍문에 의하면 충공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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