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읽고 있습니까

내 방 한 편에는 아담한 무덤이 있다. 군을 제대한 뒤부터 키우기 시작한 봉분인데, 2년이 지나니 어느 사이 눈에 뜨일 만큼 자라났다. 무덤의 주인은 한 쌍의 부부 같은 두 종의 주간지인데, 가지런히 쌓아놓고 보니 서너 살 아이의 키만큼이 족히 되었다. 매주 월요일 지하철 가판대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일주일마다 6000원의 고정 지출은 예나 지금이나 작지 않은 부담이지만, 이 둘을 사 보지 않는 것은 내게 더 큰 두려움이다.

오늘의 정보가 내일의 휴지조각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간행물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두 주간지 역시 일주일간의 소용을 다하고는 무덤으로 향한다. 그들의 옆에는 단행본들이 고고한 표정으로 책장을 채우고 있다. 책장 속의 책들에게서 뽑아낸 지혜가 보물이라면, 시효를 지난 간행물들에게서 찾아낸 사실은 유물이다. 10년 전에 읽었던 한권의 책이 오늘날 새로운 감동을 줄 수는 있지만, 10년 전의 주간지 기사가 지금 필요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어떠한 현실적인 소용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끊임없이 사서 보는 즐거움이란, 다른 어떤 종류의 독서에 뒤지지 않는다. 선호하는 장르로 점차적으로 기울게 되는 독서의 습관에서 벗어나 세상만사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취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간지 독서는 무척이나 매력 있는 일이다. 거기에, 이들 매체를 생산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면 그것을 읽는 보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주간지 H는 1989년에 창간된 H신문의 자매지이다. H신문은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참된 정론지의 필요성을 받아 안고 태어난, 세계 최초로 국민모금의 형태로 자본이 설립된 언론이다. 주간지는 국제, 생태, 환경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꼼꼼하고 치밀한 눈길을 보내는데, 특히 인권분야에 있어서 최근 몇 년간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우리 사회 언론 중 단연 독보적이라 할만하다.

주간지 S는 2006년 삼성그룹에 불리한 기사를 언론사 사장이 일방적으로 삭제하여 편집권을 침해한 <시사저널사태>로 인해 해당 언론사의 기자들이 독립하여 세운, 역시 세계에서 손에 꼽을만한 독립언론의 모범사례이다. 오랫동안 주간지에서 실력을 뽐내 온 기자들이, 일체의 권력으로부터의 간섭 없이 꾸려내는 기사들을 읽을 수 있기에 약간의 구시대적인 디자인과 들쭉날쭉한 기사 편집을 참아내고 있다.

권력화 된 언론이 미디어법을 등에 업고 방송에 진출하려는 이즈음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기능에 충실한 이들 언론은 그 존재만으로도 값지다. 이들이 차지한 내 방 한구석의 공간이 차츰 늘어난다는 것이 약간은 고달픈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H와 S의 무덤이 자라날수록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과 양심의 수준이 함께 성장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나만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은 유별난 즐거움이지만 아직은 주변에, 함께 하고 있는 이가 드물다. 무엇을 읽는가, 우리는. 구태여 가을이 아니고서라도 몇 번이고 되짚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는지.

***외대학보에 <나비의 반란>이라는 제호로 연재하고 있는 칼럼을 모음. 오랜만에 일찌감치 썼다. 그냥 뭐. 글감이 떠오른 것일뿐. 가을이 넘어가니 이것저것 글을 다시 쓰고 싶어진다. H와 S라고 표기한 것은 그러니까, 최소한의 중립성이란 거지.

by 공존共存 | 2009/11/03 16:27 | 『나비의반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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