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현인을 위한 헌사

카잔차키스에게 조르바 쯤 되고, 골드문트에게 나르치스 쯤 되는 영혼의 친구가 나에게 있다. 나는 스무살에 그와 처음 만났다. 나보다 2cm 가량이 키가 크고, 이상은 그보다 더 높은 그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영역에 대한 불안을 넘어선 공포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해 온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또래보다 한 두해를 먼저 살아온 듯 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깊은 관심과 독서. 맨손으로 외무고시를 돌파해보겠다는 객기. 가슴 속의 사랑을 죽음으로 떠나보냈던 고독. 그를 구성하는 성분들은 외로운 지식인의 원소들을 지니고 있었고, 그는 점차 자발적으로 무리를 벗어난 독존자가 되어갔다.

내가 그와 절친할 수 있다는 사연이란,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나는 그에게 줄곧 보살핌을 받는 편이고, 얻어먹는 편이다. 동시에 그의 비전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그가 품은 그림자에 빛을 내어줄 수 있는 창문의 역할을 점하고 있다. 한두해를 먼저 살아가는 그와, 한두해를 더디게 딛고 올라서 온 나는 비뚤배뚤한 모습 그대로 아귀가 맞았다. 그가 나에게서 얻어내는 해갈과 내가 그에게서 얻어내는 갈음은, 외견상으로는 대단히 이상적인 만남으로 보이고 내면상으로는 복잡다단한 층위를 형성한다.

그가 결혼한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결심했고 스물여덟에 식을 올린다. 계획한 일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일체의 번뇌를 품지 않는 그의 방식 그대로 신속하고 대담하다. 무엇보다-. 때로 과도할만큼 스스로를 가혹히 다스리는 그에게 그를 어루만져줄 반려가 생겼다는 것에 기쁘고 갸륵한 마음, 그리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지켜보면서 폭소하고 놀림을 건낼 수 밖에 없는 기묘함. 그에게 허락될 수 있는 수 많은 것들을 포기함으로써 그는, 가장 탄탄한 삶을 만들어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마땅히 그가 누려야 할 많은 가치들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궁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커플의 소박하고 소박함. 웃음과 탄식과 핀잔.

스무살의 그와 내가 서른살에 같지 않을 것이며, 유년의 기억을 그대로 지닌 채 나이를 먹고 서로 다른 시기를 살아갈 것이니 그의 결혼은, 인생의 완전히 새로운 관문에 들어서버린 그와 나의 한 단계의 이별로 이해된다. 그것이, 살아온 하나의 시기를 되짚어 그와의 인연을 글에 담는 까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하게 축하를 해야만 할 책무도 있다.

그가 결혼을 하며 얼마나 많이 걱정을 싸 안을지, 그와 같이 훌륭한 재능과 인격을 갖춘 이가 어떤 종류의 불안에 항상 휩싸여 있는지 익히 보아온 이로써 그가 불안함을 덜어놓고 결혼까지의 남은 시간들을, 즐거이 보내면 좋겠다. 그의 남은 인생의 나날들이, 그의 배우자가 있음으로 항상 기쁘고 즐겁다면 좋겠다. 그의 큰 키가 드리우는 넓은 그림자가 항상 그의 가족들의 온기로 채워졌다면 좋겠다. 그의 넓은 이마가 적어도 손자를 보기 전까지는, 더 이상 넓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가 오래 살기를 바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몇번쯤, 그는 나에게 보여주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아직 그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그는 그런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다. 앞으로도 그는 나에게 최대한을 하려 노력할 것이고, 나 역시 그래야 할 것이고, 그렇게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결혼. 또 다른 시작. 무엇이든 자신의 최대한을 뽑아내고야 마는 녀석의, 또 다른 삶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해진다.

내가 아끼는 나의 친구의 결혼 결심에 부쳐, 행복하길.

by 공존共存 | 2009/10/14 12:26 | 『co-existence』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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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차노사 at 2009/10/17 08:53
'그와 같이 훌륭한 재능과 인격을 갖춘'
이부분을
'그와 같이 매니악한 취향과 인격을 갖춘'
요렇게 수정 요망.

'세계는 스타킹과 로리의 총체'라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하지않았던가.
Commented by 공존共存 at 2009/10/17 10:50
언젠가 형도 결혼을 하게 되면 이와 같은 글의 소잿거리가 될 텐데.
그때 형도 성심성의껏 쓰임 당하고 싶음?
Commented by chanossa at 2009/10/19 07:07
근데 결혼식장 입장하기전까진 모르는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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