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by 공존共存


아마 이 영화가 개봉했던 것이 2005년이었던가, 잔잔한 화제가 되었었다. 감각적인 영화의 제목이 몇몇 방송프로그램에도 쓰였던 것을 보면, 영화의 내용이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산 모양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러브레터>라든지 <철도원>이라든지, 일본영화의 감수성을 받아들이기엔 버거운 시기를 퍽퍽하게 보내고 있었고. 다른 많은 영화처럼 그냥 그렇게, 지나쳐버렸다. 그리고 꽤~나 긴 시간이 지나서 네이트온을 통해, 한시간 남짓의 시간을 지불하고 보게 된 영화. 우선은, 비가 내리는 영화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설렘은 비밀로부터 태어난다

영화는 의문부호를 던지며 말을 건다. 그래 물론, 영화에 대해 생판 모르고 극장에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개봉된지 4년만에 컴퓨터로 보고 있는 나 역시 영화의 내용에 대해 모르는 바는 전혀 아니다. 죽은 엄마의 귀가. 통속적이고 진부한 소재이기에(사실은 내가 애초에 무관심했던 이유 역시 그런 것이었고.) 이것을 어떻게 다룰까,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각자 물음표를 띄울 것이고, 유지와 타쿠미의 일상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의 초반부는 케이크라는 복선을 통해 또 하나의 궁금증을 품게 한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서너개 가량의 수수께끼를 던져놓고는, 하나를 겨우 겨우 풀어갈 때쯤 또 두개, 다음에는 또 하나. 이렇게 불친절하게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그리고 미오의 등장과 함께 수수께끼는 설렘으로 변신한다. 1년 전 죽은 여인이 너무나 천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돌아왔는데, 정작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10년간 쌓아온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타쿠미와 미오. 그리고 유지. 아 그런데 두근두근, 죽은 사람이잖아. 분명히 끝에는 헤어질 텐데. 콩닥콩닥, 이거 그때 눈물 빼는 거 아니야. 두근두근, 대체 저 여자는 왜 기억이 없는 거야. 콩닥콩닥, 근데 장마철이 되면 돌아온다고? 그게 뭔 X소리야. 그러니까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별이라는 명백한 결말을 몇겹의 수수께끼로 감싸고는 그 위에 첫 사랑의 설렘이라는 예쁜 장식을 해 낸다. 남녀의 사랑만이 아니라 그보다 정직하고 순결한, 모자간의 사랑을 통해 영화는 우리가 가지는 사랑에 대한 편견을 날려버리고는, 어머니와 자식의 헤어짐을 숨 죽이며 기다리게 만드는 솜씨.

그리고 비밀 - 과거, 현재, 미래

그러한 설렘을 푸는 열쇠는 주인공 세사람이다. 그들은 각자 비밀의 열쇠를 품고 있다. 타쿠미는 두 사람의 과거의 비밀을, 유지는 타임캡슐에 감춰진 현재의 진실을, 미오는(이 양반은 스탭롤에서도 1등.) 필연코 헤어지고야 말 미래의 진실을. 영화란 즉슨 서사인데, 이러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세 사람의 주인공이 각자 감추고 있는 것은 매우 수준이 높은 서사 형식이다. 영화가 높은 완성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원작 소설이 일구어낸 이러한 완벽한 서사장치의 힘일 것이다.

그리고 세사람의 두번째 관계맺음 속에서, 비밀이 하나 둘 풀려나가면서 설렘은 감동으로 안착한다. 순수한 첫사랑의 추억이 행복한 죽음으로 결말지어지고, 몇번을 만나도 반드시 선택하게 되는 사랑을 보여주며 영화는 짧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영화의 핵심줄기를 이루고 있는 장치는 일본에서는 꽤나 보편적인 소재이며(사실 그 옷이 나왔을 때 뭔가 반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은 했지만), 영화의 깊이를 더욱 심도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설렘에, 감동에, 비밀을 알게되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재미를 영화는 전달한다. 수수께끼가 사라진 명확한 세계에서는 좀 더 명확한 감성을 느낄 수 있겠지. 사실 지금도 방금 영화를 다 본 상태에서 다시 틀어놓고 리뷰를 쓰고 있는데.

좋은 소설 원작을 감각적인 영상과 연출(물론 몇 군데는 일본감성영화의 식상함에 눈에 띄지만.), 그리고 음악으로 잘 감싼 영화. 익숙한 장르는 아니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고, 비밀이 비밀을 낳고 또 해소해주는 연결구조가 긴장감있게 스토리를 밀고 나가니, 영화가 개봉 당시에,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것은 당연할 것이다. 글쎄, 지금은 예전만큼은 퍽퍽한 인생도 아닌데. 좋은 영화를 보게 되어서 기쁜 마음. 그리고 비로 가득찬 영화는, 봄의 관문에서 또 다른 설렘을 전한다.

덧글

  • 천기누설 2009/04/17 02:17 # 답글

    뭐랄까, 참 착한 영화죠. 잔잔하고. 일본감성영화의 그 식상함이 오히려 이 영화에는 잘 맞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전 이 영화를 일본어 강의 들을 때 접했는데 자막없이 보아도 이해가 쉬울 정도로 일상적이고, 조용하고, 천천히 진행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공존共存 2009/04/17 02:21 #

    ㅎㅎ 맞아요. 착하고 호감이 가서 되돌아보게 하네요.
  • essen2 2009/04/17 06:21 # 답글

    일본영화는 '철도원' '설국'등 이름만 들었지
    단 한번도 접해본적이 없네요.
    자주와서 열심히 공부해봐야겠어요.

    좋은글 잘 보앗어요.
  • 공존共存 2009/04/17 10:56 #

    공부라고 말씀해주시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두가지 정도 간단한 기호학적 분석만 배우시면 굉장히 재미있는 매체읽기가 가능하답니다. 종종 해볼게요. 쉬우니까 금방 익히실 수 있을 거예요.
  • essen2 2009/04/17 11:33 #

    네 고맙습미다.
  • 지현 2009/04/17 13:00 # 답글

    이거 ost도 참 예뻐요! 영화도 뭐랄까, 예쁘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듯.
  • 아침의전령 2009/04/18 00:56 # 답글

    본 지 좀 오래되긴 했는데, 봤을 때 딱 느낌이 '생각보다는 덜 신파적'이었지요. 입소문을 통해 들었을 땐 보고 다 울 수밖에 없다 식으로 들었는데, 전 무덤덤해서 참 감성이 메말랐나 싶기도 하고 (...)

    지금 다시 생각을 해보면, 되게 잔잔하고, 평온한, 그런 감정이 스윽 지나가네요.
  • 공존共存 2009/04/19 00:43 #

    네. 확실히 신파라기보단 오히려 첫사랑의 두근두근 쪽이었어요. ㅎㅎ
  • NOGA 2009/05/25 21:10 # 삭제 답글

    CCL마크가 없어서
    사진 퍼가기가 조금 걸려서
    사진 퍼가고 트랙백 겁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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