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대문짝만한 신해철의 입시광고를 봤다. 그러니까, 아마도, 조간신문을 아침을 먹으면서 봤으니, 나는 그 신문광고가 기대하는 독자층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리얼타임으로 그 광고를 보면서, 한편으로 내 컴퓨터의 곰플레이어에는 마침 몇일째 신해철의 음악만이 틀어져 나오고 있었으니(추모제 가서 토끼몰이 당하면서 뒤틀린 심사의 반영이랄까.) 참 묘하다 싶었다.
내 또래의 팬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길을 걷는다. 난 비교적 어린 층이기 때문에, '그대에게'가 나왔을 때는 난 너무 어렸고, '도시인'이 선풍적 인기를 끌 때 여전히- 아침에 우유한잔, 점심에 패스트푸드, 하는 식으로 노래가사를 따라부르는 꼬꼬마였다가. Return of the next part 1에서는 얄리밖에 몰랐고, part2에서는 사춘기 크리로 인하야 극도의 빠돌이로 진입.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넥스트를 들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독특한 이유로 팬질을 때려치운 경우인데, 이유는 2002년의 MP3 논쟁 때 그가 보여준 찌질함이었다. 소리바다가 폐쇄되고 소리바다2가 나오고, 벅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등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왜 소리바다가 폐쇄되어야 하는가'를 토해내는 그의 강변이 대단히 불편했다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한심했던 까닭이다. 덕분에 고삼 시절, 독서실에서 집에 돌아와 지친 몸으로 꾸역꾸역 3시까지 청취했던 그의 라디오를 다시는 듣지 않게 되었고 그의 목소리 그의 주장에 걸쳐진 마초이즘에 부대낄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뛰어난 뮤지션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대중적인 지성인, 직장에서는 빚덩이를 끌어안고 꾸역꾸역 직원들 먹여살리는 사장님인 그는 지금 많이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다. 스스로가 털어놓는 그 순수했던 20대의 감수성은 예전에 잃어버렸고, 남은 것은 그야말로 처자식을 먹어살리고자 개같이 일하는 수컷의 비애.
지금 그의 팬이라고 남아 광고를 보고, 그를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들이 그의 비애에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해철은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꼰대의 비애에 아주 친근한 사람이었고(<50년 후의 내모습>), 스스로 꼰대가 되어버린 지금은 끝없이 자기의 자리에 번민하며 개처럼 일하는 자신의 처지에 마지막 자존심밖에 안남은 전형적인 가부장이라는 거.(<수컷의 몰락1>,<수컷의 몰락2>,<아버지와 나> 등. 난 그래서 비트겐슈타인 앨범이 좋다. 신해철이 가장 솔직할 때의 목소리였으니까.)
신해철은 이러한 수컷근성을 숨긴 적이 없는데 왜 팬이라는 사람들이 그 난리인지 모르겠다. 당신들이 원하던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신해철이라는 걸 이해할 머리가 안되나? 조막만한 대한민국 음악시장에서 락이라는 아주 돈 안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지금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음악적 무게감을 지켜나가는 거 말고 대체 그에게 뭘 바라나? Hero? 그건 영웅이 아니라 슈퍼맨이지.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면 이상하지만, 어쨌든 인생의 절반을 신해철과 함께 보내온, 그리고 싫든 좋든 앞으로도 같이 보낼, 꼰대적 감수성을 각인한 우리 사회의 청년으로서 그를 이해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그가 지고 있는 너무 많은 짐들을 좀 덜고 갔으면 좋겠다. 뮤지션으로서, 사장님으로서, 배나온 아버지로서, 사회의 어른으로서. 그는 지나치게 소비되고 있다.
...문제는 그럴 리가 없다는 거지. 몹쓸 꼰대.
- 2009/02/1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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