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04일
악플이 사라진 세계는 아름다울까?
별로 재미는 없지만 해마다 명절 때면 지겹게도 반복 재생해주던 숱한 영화 중 <데몰리션 맨>도 있다. 실베스터 스텔론과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영화인데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그 영화에는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금지언어라는 게 있다. 혼잣말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하든, 욕을 하면 안된다. <모든 공간>에 언어감시기가 장착되어 있고, 어느 누구든 금지언어를 사용할 경우 <즉시 경고>를 받는다. 물론 그 영화 속에서 우리의 록키 발보아 선생은, 4번의 욕으로 4장의 휴지를 만들어 화장실에서 유용하게 사용했지만.
어쨌든, 영화가 표현하는 근미래는 이처럼 완벽히 통제된 상태에서 조화로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의 모든 공간에서 언어생활을 속박당하고 있다. 아, 걱정은 마시라 그 세계에도 독재자가 있어서, 사람들의 말을 통제하다가 악당의 손에 죽으니까.
다시 2008년, 한 연예인이 죽었다. 사람들은 악플 때문이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정신질환인 우울증이, 정신병원=수치심으로 연결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얼마나 영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참에 악플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분위기다. 최진실법이라더라? 악플을 실질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이라는데 뭐 관심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그따위 상상들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인터넷 공간의 꼬락서니는 보나마나 뻔하다.
생각을 해보자. 내가 만약 이 글 중간에 "이명박 개새끼"라고 쓴다면, 그것은 최진실에게 가해졌던 그 많은 악플과 완전히 동일한 취급을 당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법적 규제를 당한다. 뭐 이미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 글이 사라질 수 있고 나는 이메일을 받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모니터를 끄고 엄마 아빠와 밥을 먹다가 "이명박 개새끼"라고 내뱉는다면, 엄마는 아무 관심 없이 물을 마실 거고 아빠는 나와 싸울 것이다. 그걸로 끝이다. 인터넷 공간은 전적으로 모니터 밖의 세계와는 다르다. 우리가 하는 말의 영향력이 보다 크고, 그래서 인터넷이 21세기의 메가트렌드인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절대적인 원칙이란 게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영혼이 멍들지 않고, 관계가 병들지 않는다. 물론 악플은 폭력이다.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 바깥에서 시시각각 얼마나 많은 폭력을 경험하는가?
사회적 차원에서 온갖 폭력의 수준을 점점 강화하면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만 악플이 없어지길 바란다는 것을 제정신이라고는 볼 수 없다. 뱀이 모가지를 물었는데 손발이 저려온다고 그것부터 잘라내자는 짓이다. 자, 우리는 지난해, 아프간에서 선교봉사를 떠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저주를 퍼부었는가, 그들 중 몇몇이 죽고, 몇몇이 살아돌아왔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기도했는가. 연예인이 죽고 나서는 하느님 맙소사, 악플은 죄악이옵니다 반성을 하는데 개독교인들의 목숨이 경각에 처했을 때는 마음놓고 악플을 날라댄다. 이것이 우리의 수준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근거와 기준으로 악플을 없애자는 것인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성산업이 세계 모든 나라에 있다. 성산업이란 지독한 폭력이다. 여성을 좀먹는 짓이다. 그러나 어느 정부든간에 그것을 일정수준 허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다른 차원에서의 성적 폭력을 상당수준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우리는 야동 덕분에 다른 더 나쁜 짓거리를 덜 하는 거다. 악플도 마찬가지다. 억눌리고 왜곡된 욕구는 어떻게든 표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 장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말이다. 햇볕에 널지 않으면 빨레가 마르지 않는데. 젖었다고 그걸 버리자는 것. 그것이 악플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 그럴 시에 사람들의 억눌린 욕구와 분노는, 어떤 해방구를 찾을까?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지금 여당에서 추진하는 "최진실법(사이버모욕제)"가 악플에 대한 반성 기류를 타고 실현되었을 때, 모든 인터넷 공간은 소통의 공간이 아닌 감시와 규제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 인터넷 속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욕할 수 없다. 그 결과가 궁금한 사람은 <데몰리션 맨>의 결말을 보면 된다. 그러는 사이에, 권력의 판도는 활짝 열리고 우리 사회의 폭력은 점점 강화되겠지.
최진실의 죽음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욕을 하려거든 정신질환을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욕해라. 우울증이라는 병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아니 스타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했던 당신들부터 반성문을 써라. 그리고 나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의 풍조를 욕해라. 아프간 선교봉사단에게 쏟아내었단 당신들의 그 저주에 칼을 박아라. 그리고 나서, 또 누군가가 욕하고 싶다면 연예인들의 삶을 상품가치로 포장해 파는 미디어를 욕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더러운 자본의 욕망에도 한번쯤음 침을 뱉어도 좋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왜 악플을 던졌던가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래, 최진실을 욕했던 건 미안한데 이명박을 욕하는 건 안 미안한가?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경우에든 지켜져야 한다. 폭력은 어느 경우에서든 지양되어야 한다. 악플이라는 병리현상은 그렇다고 해서, 죄악시해서는 사라질 것은 아니다.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므로, 우리 사회의 천박함이 낳은 것이므로.
금지언어라는 게 있다. 혼잣말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하든, 욕을 하면 안된다. <모든 공간>에 언어감시기가 장착되어 있고, 어느 누구든 금지언어를 사용할 경우 <즉시 경고>를 받는다. 물론 그 영화 속에서 우리의 록키 발보아 선생은, 4번의 욕으로 4장의 휴지를 만들어 화장실에서 유용하게 사용했지만.
어쨌든, 영화가 표현하는 근미래는 이처럼 완벽히 통제된 상태에서 조화로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의 모든 공간에서 언어생활을 속박당하고 있다. 아, 걱정은 마시라 그 세계에도 독재자가 있어서, 사람들의 말을 통제하다가 악당의 손에 죽으니까.
다시 2008년, 한 연예인이 죽었다. 사람들은 악플 때문이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정신질환인 우울증이, 정신병원=수치심으로 연결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얼마나 영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참에 악플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분위기다. 최진실법이라더라? 악플을 실질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이라는데 뭐 관심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그따위 상상들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인터넷 공간의 꼬락서니는 보나마나 뻔하다.
생각을 해보자. 내가 만약 이 글 중간에 "이명박 개새끼"라고 쓴다면, 그것은 최진실에게 가해졌던 그 많은 악플과 완전히 동일한 취급을 당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법적 규제를 당한다. 뭐 이미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 글이 사라질 수 있고 나는 이메일을 받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모니터를 끄고 엄마 아빠와 밥을 먹다가 "이명박 개새끼"라고 내뱉는다면, 엄마는 아무 관심 없이 물을 마실 거고 아빠는 나와 싸울 것이다. 그걸로 끝이다. 인터넷 공간은 전적으로 모니터 밖의 세계와는 다르다. 우리가 하는 말의 영향력이 보다 크고, 그래서 인터넷이 21세기의 메가트렌드인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절대적인 원칙이란 게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영혼이 멍들지 않고, 관계가 병들지 않는다. 물론 악플은 폭력이다.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 바깥에서 시시각각 얼마나 많은 폭력을 경험하는가?
사회적 차원에서 온갖 폭력의 수준을 점점 강화하면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만 악플이 없어지길 바란다는 것을 제정신이라고는 볼 수 없다. 뱀이 모가지를 물었는데 손발이 저려온다고 그것부터 잘라내자는 짓이다. 자, 우리는 지난해, 아프간에서 선교봉사를 떠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저주를 퍼부었는가, 그들 중 몇몇이 죽고, 몇몇이 살아돌아왔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기도했는가. 연예인이 죽고 나서는 하느님 맙소사, 악플은 죄악이옵니다 반성을 하는데 개독교인들의 목숨이 경각에 처했을 때는 마음놓고 악플을 날라댄다. 이것이 우리의 수준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근거와 기준으로 악플을 없애자는 것인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성산업이 세계 모든 나라에 있다. 성산업이란 지독한 폭력이다. 여성을 좀먹는 짓이다. 그러나 어느 정부든간에 그것을 일정수준 허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다른 차원에서의 성적 폭력을 상당수준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우리는 야동 덕분에 다른 더 나쁜 짓거리를 덜 하는 거다. 악플도 마찬가지다. 억눌리고 왜곡된 욕구는 어떻게든 표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 장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말이다. 햇볕에 널지 않으면 빨레가 마르지 않는데. 젖었다고 그걸 버리자는 것. 그것이 악플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 그럴 시에 사람들의 억눌린 욕구와 분노는, 어떤 해방구를 찾을까?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지금 여당에서 추진하는 "최진실법(사이버모욕제)"가 악플에 대한 반성 기류를 타고 실현되었을 때, 모든 인터넷 공간은 소통의 공간이 아닌 감시와 규제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 인터넷 속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욕할 수 없다. 그 결과가 궁금한 사람은 <데몰리션 맨>의 결말을 보면 된다. 그러는 사이에, 권력의 판도는 활짝 열리고 우리 사회의 폭력은 점점 강화되겠지.
최진실의 죽음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욕을 하려거든 정신질환을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욕해라. 우울증이라는 병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아니 스타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했던 당신들부터 반성문을 써라. 그리고 나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의 풍조를 욕해라. 아프간 선교봉사단에게 쏟아내었단 당신들의 그 저주에 칼을 박아라. 그리고 나서, 또 누군가가 욕하고 싶다면 연예인들의 삶을 상품가치로 포장해 파는 미디어를 욕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더러운 자본의 욕망에도 한번쯤음 침을 뱉어도 좋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왜 악플을 던졌던가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래, 최진실을 욕했던 건 미안한데 이명박을 욕하는 건 안 미안한가?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경우에든 지켜져야 한다. 폭력은 어느 경우에서든 지양되어야 한다. 악플이라는 병리현상은 그렇다고 해서, 죄악시해서는 사라질 것은 아니다.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므로, 우리 사회의 천박함이 낳은 것이므로.
# by | 2008/10/04 01:54 | 『co-existence』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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