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패배, 어찌된 일일까.

1997년 국가부도 사태로 IMF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직후, 언론은 광범위한 박정희 띄우기에 착수하게 된다.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여론조사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연하다는듯 반복보도되고, 그때마다 박정희의 순위는 올라가다가, 더 올라갈 자리가 없게 되고난 뒤부터는 선호도의 퍼센테이지가 상승해갔다. 충격적인 경제위기, 그리고 민족경제 중흥의 아이콘. 이 대대적인 선전작업은 물론 당시의 신한국당 정권을 위한 것이었는데, 경제를 파국에 몰아간 여당에 대한 책임론이 선거국면에서 쏙 사라지고, 경제부흥을 위한 강력한 정부론이 그 해의 선거를 지배하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IMF라는 희대의 실정을 무마하고, 선거의 프레임을 완전히 여당 편향으로 뒤집은 이 막강한 선전 전략이 오로지 '박정희를 닮아서 뜬' 이인제라는 인물 덕분에 한편의 희극으로 마무리 된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겠지만.

정치인으로서 박근혜는 이즈음 등장한다. 199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그 이듬해에 벌어진 보궐선거에서 이회창에 의해 한나라당에 영입된다. 박정희에 대한 호의적 분위기를 한나라당에 대한 호응으로 지속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해서, 이것은 매우 적절하면서 자연스러운 조치였다. 박근혜 역시 비극으로 마무리된 그녀의 부모에 대한 중장년층의 애틋함이 경제위기의 충격과 결합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신독재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역사적 죄과로부터 복권을 이루었다. 이러한 과정은 그야말로 절묘한 정치공학의 마술처럼 보였다. 이후 박근혜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로 한나라당 당대표가 될 때까지 비교적 조용히 국회의원으로서 활동을 이어간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바로 200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녀가 잠시 탈당하여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 독자세력화를 모색한 바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등장과 정몽준의 성공 이전, 이회창 대세론이 막강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탈당을 할만큼 이회창과 어떤 갈등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선이 끝나기도 전에 박근혜가 한나라당으로 복귀했고, 이회창은 그것을 받아줬으니 두 사람 간의 알력이 크지 않았음은 더욱 명확하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아마도 대권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미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가 5백만표를 얻으며 박정희의 힘을 증명해보인 바 있다. 한나라당 내에선 이회창과 대적이 되지 않고, 본인의 자금력은 막강하다. 최근 밝혀지고 있는 바와 같이, 재벌과의 혼맥과 박정희의 비자금으로 형성된 유산, 그리고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자금원이 박근혜에겐 있었다. 게다가 보수층의 광범위한 지지까지. 돈과 지지층을 넉넉하게 보유한 박근혜로서는 시도해볼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대권도전에 실패한다 할지라도 약간의 돈 말고는, 빼앗길 것이 없었으므로.

2001년의 탈당과 창당이 대권도전을 위한 것이었든 아니든 두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첫째. 그 당시부터 박근혜의 권좌에 대한 욕구가 평범한 정치인보다는 훨씬 컸다는 사실. 둘째. 이 일을 계기로 박근혜가 세력화를 시작하였고, 이들이 이후 당 대표로서 한나라당을 운영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 다시 2004년으로 돌아와서, 박근혜가 탄핵역풍으로부터 한나라당을 구원하는 장면을 보자.

탄핵 역풍에서 한나라당이 얻어낸 의석은 121석이었다. 박근혜의 선거전략은, 매우 간단했다. 당사를 천막으로 옮긴 뒤, 아버님을 외치는 것. 삼당합당 이래로 김영삼의 세력권이었고, 노무현의 새정치바람에도 열광했던 부산과 경남이 무려 25년만에 박정희를 전면에 내세운 박근혜의 적극적인 캠페인에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뒤에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열, 그 뒤에 이어진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 조중동의 격렬하고도 혹독했던 저항 등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이 있었으나, 기본 밑바탕에는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박정희라는 막강한 존재, 그 후광을 노골적이고도 독창적으로 활용한 박근혜의 힘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박근혜만큼 박정희를 전면에 내걸고 선거전에 나선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한나라당의 이전 실력자였던 이회창은 그럴 필요가 없고, 이후 당권을 잡았던 이들도 계파가 달라 박정희를 추종하는 무리는 아니었다. 탄핵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박정희는 드디어 한나라당 내부에서 정치적 복권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박근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표직을 사퇴할 때까지, 중간선거를 전승으로 이끌며 노무현정권의 강력한 적수로서, 미래권력의 맹아로 떠오르게 된다. 그녀가 소수정당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수 있었던 이유 속에는, 10년전 뿌려두었던 박정희신드롬의 구조가 그대로 반복된다. 경제가 어렵다. (박정희의 강력한 리더십 대신)박근혜의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녀는 당 대표로 재임하는 동안 조중동과 함께 끊임없이 경제문제를 부각시켰고, 실제 경제지표는 호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극화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던 참여정부는 경제정책에 무능한 당으로 낙인이 찍혀버리고 만다. 이런 경제구조의 원인, IMF라는 원죄를 저지른 한나라당이 오래 전에 뿌려두었던 박정희신드롬의 씨앗이 한창 만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명박에게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배하고, 다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18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의 후보로서 다시 인생의 절정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선거를 하루 앞둔 지금,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은 2004~2006년의 당대표 시절보다 나아진 점은 별로 없다. 오히려, 안철수의 등장으로 5년 넘게 계속되어 오던 대세론이 한방에 꺾여버렸다. 선거전략은 구태의연하고, 선거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TV토론에서는 이정희에게 판판이 깨지고, 문재인과의 양자토론에서도 처참하게 무너져내렸다. 가카에게 장악당한 언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선거를 여기까지 끌고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대체 왜, 박근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권좌의 길목에서 결정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의 정치인으로서의 영광은 거의 다  박정희의 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국가부도 사태와 박정희 신드롬 사이에서의 첫 등장. 탄핵 역풍 속에서 당을 구해낸 미래권력. 한시적 대표로 끝날 것이라는 추측과 반대로 강력한 노무현의 대적자로 군림하던 2006년까지의 대표 재임. 이 모든 과정이 1997년 IMF와 동시에 형성된, 박정희신드롬의 덕이었음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는 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딱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선거는 늘 안정적으로 당선될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지역주의에 거듭 도전하며 산산히 부서지는 모습으로 노사모 열풍을 일으킨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박정희의 딸로서 안락한 정치생활의 시작. 그리고 조중동이라고 하는 족벌 언론의 화려한 지원. 그러나 박근혜의 한계는 바로 여기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인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은, 특히나 선거에 있어서 표의 확장성이 없다는 점이 치명적 단점이다. 먼저 가카 얘기를 해보자. 2007년의 가카께옵서는 '부~자되세요'라는 시대정신의 총체였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는 자기경영서적이 휩쓸었고, 10억만들기라는 목표가 마치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인 양, 인구에 떠돌던 시기 속에서 샐러리맨 신화로 떠오른 인물이다. 심지어 가카께옵서 진보라는 진단을 내리는 사람들도 흔했다. 막강한 표의 확장성을 가진 것이다. 그랬기에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정통성을 손에 쥐고도,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가카께 석패하고야 만다.

경제부흥이라는 공통된 지향점이 있지만 둘은 다르다. 가카는 김영삼정권 이래로 우리 사회에 착종해 온 신자유주의의 철학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궤적이, 신자유주의의 경제발전 신화를 그 자체로 웅변하는 것이다. 반면 박근혜가 등에 지고 있는 박정희의 후광은, IMF의 충격속에서 다분히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에 가깝다. 만약 당시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이 상징조작이 없었다면,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여당에 심판론이 강력하게 가해졌을 것이고, 이인제라는 괴물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한발 더 나아가 당시의 한국 경제정책에 대해서, 닥쳐오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 진지한 반성이 가능했다면,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는 양극화로부터 조금은 먼 길을 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 모든 가능성을 집어삼키고 박근혜는 정치인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났고, 박정희의 모순과 한계를 그대로 지니고 15년의 정치생활을 계속해왔다. 아버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 없이.

그 댓가는 집토끼를 가둔 콘크리트 감옥이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를 하던 시절 받던 국민들의 지지, 이른바 대새론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월드스타 비와 매우 유사하다.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지지율이 높은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박정희신드롬은 전통적 보수 지지자층의 이탈을 막기 위한 프레임에 불과하다. 새로이 유입되는 지지층이 생겨날 수 없는 구조다. 박정희를 향수하고 추억하는 이들은 물론 아직 대단히 많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그 수는 감소하고 있다. 이들이 어떻게 박정희를 미화하고 독재를 부정한다 한들, 약간의 균형잡힌 교육의 기회만 주어져도 새로이 투표권을 갖게 된 유권자들을 도저히 유혹할 수가 없다. 부모의 영향력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난 젊은 유권자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자신들끼리 강고한 연대를 구축해, 올해의 선거구도를 신구간의 갈등, 보혁대결로 만들어냈다.

표의 확장성이란 것은, 보수-중도-개혁세력으로 대별되는 한국의 선거구도에서 너무도 중요하다. 양 극단은 자신의 지지세력에 이를테면 국가부도사태라거나, 탄핵과 같은 큰 일이 있지 않고는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는다. 이 광범위한 중간지대를 선점하는 것이 보수와 개혁세력의 공통된 고민이고, 심지어 이 중간지대가 투표를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선거를 양비론으로 몰아가버리는, 악의적인 정치행위가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구도이다. 이것을 잡은 사람이 선거를 승리한다. 이명박이 중산층을, 노무현과 안철수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며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박근혜 역시 중간층을 공략하기 위해 세종시를 지켜냈다는 둥의 사기극을 펼쳐왔지만, 이명박과 노무현, 안철수가 해냈던 광범위한 지지층 획득과는 차이가 크다. 오히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일베'로 대표되는 폐쇄적 지지층을 만들어냈다. 정치세력이 집토끼 잡기에 혈안이 되어 산토끼를 한 10년 쌩까다 보니 보수세력의 지지층까지 다른 세력에 대해서 대단히 폐쇄적인 태도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다. 정치의 기본은 연대와 참여인데, 대세론이라는 환상에 빠져 정치세력과 지지층이 한마음 한뜻으로 반대세력을 쌩까고 비웃고 엿을 먹이며 스스로의 목을 졸랐다. 이런 태도가 정권 획득에 도움이 될까? 다시 말하지만 한국의 정치구도는 누가 중간층을 가져가냐의 싸움이다. 최소한의 사회적 소양을 선비놀음이라 비웃는 이들이 정치세력으로서 매력을 가질 턱이 없다.

박근혜는 보수세력이 스스로 만든 함정에 갇혔다. 보수세력 스스로도 박근혜라는 함정에 빠졌다. 1997년 국가부도 사태의 책임을 피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박정희를 되살려낸 그들이다. 이것은 놀랍게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의 재임 시기에도 끊임없이 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고, 한단계 더 발전한 이명박이라는 보수정권도 창출해냈다. 그러나 이명박 이후에 보수세력은 다시 박정희의 유산, 박근혜를 선택했다. 단지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유지되었던 그녀의 대세론은, 정작 그 안에 오늘날의 시대를 대변할만한 어떠한 가치도 담고 있지 못한 퇴행적 현상에 불과했다. 새로이 태어나는 유권자들을 유혹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한 박정희신드롬은, 안철수의 등장으로 수수대처럼 쉽게 부서져버렸다. 반면 대권 가도 초기에 친노와 민주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표의 확장성을 띄지 못하던 문재인은 안철수와 끝내 화학적 결합에 성공하며 복지시대라는 시대의 요구를 표상하는 강력한 대통령후보로 거듭나게 된다.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가장 큰 네거티브라는 지적은 정론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로열로드를 걸어 오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투쟁이란 것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토론은 명령이고 비판은 반항이며, 국가는 그녀의 집. 대통령은 가업이다. 이정희와 문재인에게 토론에서 철저히 공박당한 것은 더도 덜도 말고 그녀가 완전히 무능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여러 유능한 인재들은 인혁당과 민혁당을 구분하지 못하고, 위장전입을 위장전업으로 잘못 읽어내리는 당 대표를 보좌해야 했다. 이유는 역시 딱 하나. 그녀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는 문재인의 복지국가, 안철수의 새정치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정경유착의 재벌경제, 유신철권통치는 시계를 되돌려도 너무 되돌린 짓이다. 이제 새누리당은 꿈에서 깨길 바란다. 폐기되어야 할 박정희신드롬에 매달려 천박한 철학을 가진 대통령후보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남기지 말고, 가카가 행했던 모든 부정과 비리도 낱낱히 밝히고 반성해야 한다. 총력전으로 펼쳐진 이번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새누리당과 이 땅의 수구세력들이 입을 피해는 너무도 클 것이다. 미래는 속단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떤 성급한 희망도 품지는 않을 것이나 이승만도 끝내 무너졌다. 박정희도 끝내 죽었다. 군사정권도 끝내 사라졌다. 역사는 그렇게 전진하는 것이다.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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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共存 | 2012/12/18 13:49 | 『co-existence』 | 트랙백 | 덧글(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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